안티기독교의 목표와 노선

기독교 박멸에 대하여" - 인드라

시골마을 주민 2019. 12. 19. 23:29

창훈은 심*성이라는 분으로 종교병원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였고 반기련 안티들과 잘 어울리며 그들의 수양회(?)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2005년 반기련 내분때에는 쓴소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5년 무렵 뉴스앤조이 한겨레 토론방 등에 활발하게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10월 반기련이 내부갈등으로 일부 역량있는 안티들이 이탈할 때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창훈(심*성 님의 호로 추정)님의 토론광장에 올린 인드라의 기독교 박멸에 관한 주장입니다.

'기독교 박멸'을 주장한 인드라는 경남출신으로 칼럼을 집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안티나 반기련을 떠났습니다.

필력이 있어 여러 안티사이트에서 활동을 하며 많은 칼럼을 썼습니다.

그는 일관되게 기독교 박멸을 주장합니다. 비록 외모와 문장은 부드러우나 주장은 강한 안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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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훈토론광장 

 

박멸에 대해서

2005/07/18 오전 8:33 | 창훈토론광장 | [창훈]


제 목 박멸에 대해서

이 름 인드라     조 회 59 [스크랩] [프린트]


 

기독교의 잘못된 점은 이제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젠(우리의 오랜활동도 한몫했을겁니다) 박멸이냐 개혁이냐를 논할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개독들의 글들은 개독교가 잘못이 없다라는 논지가 주류였다 해도 과언아닐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독이나 안티나 공히 개혁이냐 박멸이냐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선 이야기를 하기전에 저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저는 명백히 박멸론자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왜 박멸인가?에 대해서 논하게 되겠지요?

 

왜 개독교는 박멸되어야 하는가?

저는 이것을 거시적이고도 어려운사변을 동원하지않고 태도적입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실 전 머리가 나빠서 어려운거 모릅니다..)

대체적으로보면 몇가지 관점들이 드러나는데 (사실은 방편적인 입장에서의 논란들입니다만)

1. 무조건 박멸

2. 개혁하여 참개독을 일깨우자

3. 개혁하여 박멸로 이끌자

4. 개혁과 박멸은 동의어이다

등등 ....다양한 분류가 가능할것입니다.

 

1번의 경우 자칫잘못하면 편파적이며 비이성적인 선동으로 몰려갈수있는 우려있겠습니다.

2번의 경우는 반개독교운동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수있습니다.

개독교는 초기교회시절부터 이러한 논란이 시작되어왔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의 서신을 보면 예수를 필두로한 개독교의 정체성논란이 심했다는 흔적을 발견할수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작금의 개독교는 많은 부분 비판의 도마위에 올라서 스스로 부정되기도 한 그러한 수정의 역사를 거친것이 작금의 개독이라고 할수있겠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관통해 남아있는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는 무언가 이따>라는 택도 아인 근거없는 추측일겁니다.

어느덧 이것은 사회통념에 스며들게 되어 일반인들도 아무런 근거없이 그러한 관점...즉 예수는 뭔가다르다,,,

종교의 목적은 선하다,.,,기독교는 종교의 일종이다라는 날조에 의문을 가지지않게 되었습니다.

단연코 안티가 이러한 생각을가지고있다면 그는 좀더 숙고해야 할것입니다.

또한 3번의 경우는 방편적으로 개혁안을 수용하는것으로 보여지는데 자칫 이것은 2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줄수있다 보여집니다.

분명히 박멸을 위한 개혁의 대안을 제시하셔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4번은 좀 복잡합니다.

4번의 결과를 숙고해보면 두가지 결과가 예측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방향성에 관련하여 박멸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것입니다.(아마도 진여님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여집니다 - 개독은 개혁할수없다..진정한 개혁은 곧 박멸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은 위험해 보입니다.

깊은 전이해가 부족하다면 2,3번의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박멸론은 좀더 따져 보아야 할것입니다.

1번일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2,3번일수도 없는 일일겁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박멸론은 어디에서 찾을수있을까요?

과연 개독들이 개혁할 가능성이 없어서 우리가 박멸론을 외치는 것일까요?

개혁이 불가능해서 박멸을 외친다면 어려움에 봉착할수있습니다.

저들이 개혁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찌될것인가?

과연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완전무결한 결단을 내릴수가 있을까요?

 

그렇지않습니다.

개독교가 개혁가능하다하여도 전 박멸입니다.

즉 박멸론은 한 진정한 인간의 양심선언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박멸이 가능하던 불가능하던 그런것을 따지지않습니다.

인류가 완전한 평화를 일굴가능성이 있을까요?

과연 역사안에서 그것이 가능했던가요? 그럼에도 우리는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대안과 개혁은 개독들이 할일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우리는 평가를 할수는 있을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박멸을 주장하는 이유는 개독교의 죄악이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용서할수없다는 한 인간의 뿌리깊은 정당한 분노에 기인합니다.

무엇보다 개독교에 분노해야할일은 인간의 내면을 구속하여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일것입니다.

인간을분열하고 개인을 소외시키는 상념덩어리기에 그안에서 온갖 썩은 악취가 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을 분열하는 획책에 동의할수없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종교는 선하다란 보편적인 입장을 등에 엎었다해도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겠다는 겁니다.

 

박멸론은 그결과나 과정의 어려움에도 메이지않겠다는 개인의 고백입니다.

또한 박멸은 인간을 위해...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 하나라는개인이 할수있는 조그마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의 언어인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반개독이라는 레테르(꼬리표)를 당당히 선포할수있는것입니다.

 

개독교가 박멸되는 날 인류는 기댈곳없는 심연에 슬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아갈것입니다.

 

나는 나의 역할이 그기까지임을 슬퍼하지않습니다.

어떠한 난관이 있음에도 무엇이라도 할수있었다는것에 기뻐할것입니다.

비록 지옥에서 뼈를 깍는 고통속에 있다해도 말입니다.

박멸은 신이 존재해도 신에게 저항하겠다는 결단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인간을위해서 말입니다.

 

창가에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닙니다.

그들중 하나하나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슬퍼하는 사람...무언가에 도취된 사람..멍한사람...미소짖는 사람....

그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지난날을 생각하며 미소짖습니다.

한사람을 사랑하기위해 보낸 수많은 불면의 밤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수많은 모든사람을 사랑하는 연습이라는것을 왜이제서야 알게 된것일까요?

 

저는 개독교인을 그래도 믿습니다.

개독교인들도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속에 있을 테니까요....

 

당신의 내면에 경배합니다.


작성시간 : 2005-07-15 19:53:26




세일러문

:: 누가 왤케 글을 잘 썼나 했드만;;

인드라님이셨네요;;; 05-07-15 20:32


임종목

:: 제가 작성중인 [나는 왜 안티크리스천이 되었는가?]라는 장문에서 개독박멸은 정당한가?를 주제로 쓴글이 들어가기로 되있습니다 이편에서 저는 개독교를 근본주의, 문자주의, 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나는 영지주의, 자유신학까지 포함하여 개독박멸을 말하고자 해요

여하튼 영지주의에 대하여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5-07-15 21:30


메타노이

:: 박멸이라는 말이 여러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혼란이 있고, 박멸을 주장하더라도 개인마다 조금씩 의미가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기독교의 박멸을 원하지만 기독교란 이름의 종교의 완전소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유가 기독교의, 구체적으로는 한국 개신교의 정수이자 요체를 건드리는 것이기에 단순히 개혁이라는 말로 포장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스스로 자신들의 정수를 포기한다면 그 순간 스스로 기독교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 정수를 포기한 이후 똑같은 이름의 종교로서 거듭날 수 있겠으나 이전의 기독교와 이후의 기독교는 완전히 본질이 상이한 것이 됩니다. 만약 개혁이라는 말로 대신한다고 해도 기독교가 스스로 자신들의 정수를 포기하지 않고 아무리 개혁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저에게는 그 개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박제화된 개혁이 될 뿐이고, 저 또한 영원히 기독교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저 개혁이라는 것은 본성과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는 부분에서 가능한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새의 본성이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간단히 규정할 때 그 새에게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제인 것 처럼 기독교의 개혁이라고 표현하든, 박멸이라고 표현하든 그 용어에 반기련의 지향점을 반영하는 새로운 의미부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해도 분명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종목님의 말씀처럼 딱딱 부러트려서 기독교 박멸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 뭘 알아야 부러트리든지 붙이든지 할텐데 말이죠. -_-;; 아무튼 임종목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05-07-16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