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길 목사는 '기독교와 안티기독교의 대담 '에서 발제강연을 한 분으로 진보신학자로 분류되는 분입니다.
정강길 목사는 세기연에(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 기획실장) 관계하였고 지금은 몸학기독교 연구소(http://freeview.org/page1.php)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티기독교는 주로 보수기독교를 비판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안티기독교는 보수기독교는 물론 진보기독교도 함께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각을 그들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풍산개나 진도개나 같은 개'라는 것입니다.
아래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정강길 목사에 대한 "성경태워 정신평화'라는 안티의 정강길 목사에 대한 비판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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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길 패러디]정강길의 세기연을 어떻게 볼것인가? (1)
글쓴이 : 성경태워정신평화 (122.♡.168.146) 날짜 : 2007-07-28 (토) 17:14 조회 : 2652
이건 정강길의 패러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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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길의 세기연을 어떻게 볼것인가? (1)
들어가며
200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인 반기독교운동이 형성 되면서 종교 진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종교비평이라는 용어는 내 기억 상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 무렵 보수기독교에 의해 억눌려서 숨죽이고 있던 진보기독교 진영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것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00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인 반기독교운동이 형성 되면서 종교 진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종교비평이라는 용어는 내 기억 상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 무렵 보수기독교에 의해 억눌려서 숨죽이고 있던 진보기독교 진영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것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시에 기독교와 관련해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정강길이라는 사람이 혜성같이 나타나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온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진보 기독교 그룹들을 모아 현재의 <세계와 기독교 변혁을 위한 연대>(이하 ‘세기연’, http://freeview.org/)을 창설한 것이다.
필자가 경험했던 세기연 에피소드
최근의 일이지만 나 자신은 우연히 정강길씨의 반기련 비판 게시물을 접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정강길의 반기련 비판 글을 발견하고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들은 대체로 반기련은 동호회 수준에 머무르는 집단이며, 반기독인들은 화이트헤드의 무신론을 극복한 새로운 유신론을 모르는 찌질이 라는 것이다. 세기연의 접속수는 그다지 높지 않았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안타까움도 있어서인지 나는 약간의 답변을 남겼다. 즉, 반기독인들은 야훼라는 특정한 신을 부정하는 것일뿐, 무신론을 설파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정강길씨가 운영하는 세기연 이야말로 동호회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정강길씨는 나의 그러한 코멘트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어퍼컷을 날려 주었다. 접속차단이라는 방법으로 나를 추방한 것이다.
진보 기독교의 발생과 형성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가 가장 큰 원인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보 기독교의 발생이 기존 기독교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진보 기독교의 발생은 기존 기독교의 끔찍한 폐해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진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크게 보면,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을 찬양하는 보수기독교의 폐해들, 보수신학의 문제점, 목사들의 재산 축적과 불륜 행태들, 거대 교회에 대한 비난 등등 이러한 것들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안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보 기독교의 발생이 기존 기독교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진보 기독교의 발생은 기존 기독교의 끔찍한 폐해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진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크게 보면,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을 찬양하는 보수기독교의 폐해들, 보수신학의 문제점, 목사들의 재산 축적과 불륜 행태들, 거대 교회에 대한 비난 등등 이러한 것들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안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진보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의 사회적 행태에 대해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꼬집어내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김목사의 쓰나미 파문 같은것은 반기독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진보 기독교측에서도 오랫동안 안주거리이기도 했었다. 이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 발견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행태도 곧잘 꼬집어 낸다.
때때로는 그 관찰력이 아주 탁월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나는 건강한 안티 기독교인이라면 진보 기독교 사이트도 충분히 가볼만 하고 이들의 주장과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이 기존 기독교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매우 예리하게 꼬집어내고 발견해내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진보 기독교의 주장들을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진보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존의 주류 기독교를 비꼬며 풍자하는 측면들도 알아둠이 좋다는 얘기다. 사실 그들의 영혼들 역시 상처받은 영혼들이긴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진보 기독교의 한계
특히,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은 자들에겐 세기연 사이트를 접할 경우, 희열을 느낄 만큼 매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화이트헤드를 비롯하여 각종 민중신학의 정수를 맞보게 하면서, 마치 그동안 보수기독교에 의해 억누르고 금지 되었던 이단사상들을 마음껏 받아 들일수 있는 해방구 노릇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기독교의 한계는 바로 그것이 현재로선 존재의의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즉, 진보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의 폐해로 인해 발생하였지만, 기존 기독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오만과 독선을 지니고 있었다면, 정강길의 진보 기독교는 “화이트헤드와 민중신학”의 신념이 무차별적으로 전제되고 신봉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독선과 독단은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은 아주 많다.
예컨대, 경제학을 전공한 안티 기독교인 한 명이 세기연 사이트에 들어와서 “정강길님, 화이트헤드를 잘못 언급 하셨습니다. 안티들은 야훼라는 특정한 신을 부정할뿐이지 무신론을 설파하지는 않거든요? 정강길님께서 실수하신 겁니다."라는 정말로 순진한 메시지를 남겼다면, 이는 정강길씨 추종자들의 집단 먹잇감이 되기엔 딱 안성맞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이트헤드를 모르는 무식쟁이로 몰아 붙이고는, 유명한 민중신학자들의 이름을 좌르륵 나열하며 아무런 논리도 없이 열불을 내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게다가 세기연 사이트에서 순진한 안티 기독교인 한 명에게 뭇매를 가할 때 그나마 동원되는 비난의 근거들은 대체로 진보 기독교인들의 민중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들에 기인한다.
기존 기독교가 <기독교 절대주의>라는 도그마를 가졌다면, 진보 기독교 역시 <민중신학 절대주의>라는 절대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둘은 결국 평행선이요 폭력적 대결이 되기 십상이라고 하겠다.
재밌게도 세기연이라는 진보 기독교 사이트의 취지에 따르자면 “자기해체까지도 가능한 창조적인 열린 민중신학”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세기연 게시판 대부분의 내용들은 화이트헤드를 모르면 쪽팔려서 발붙이기도 힘든 곳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이들의 정체성과 한계는 <정강길의 민중신학>이름과 달리 민중과 동떨어져 있음을 잘 알게 해준다. 열려있는 진보 기독교를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무식한 기독인들은 범접하기도 힘든 것이다.
이미 이들의 정체성과 한계는 <정강길의 민중신학>이름과 달리 민중과 동떨어져 있음을 잘 알게 해준다. 열려있는 진보 기독교를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무식한 기독인들은 범접하기도 힘든 것이다.
어떤 방에 ‘화이트헤드를 좋아하는 사람’과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에 관심없는 사람’이 같이 산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그러한 사람인데 무슨 대화의 접점이 있을까? 진보 기독교인들은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이성적 설득을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엿먹으라고 되돌려주겠다는 식으로 그렇게 취급하는 성향이 강하다. 예컨대,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에 관심없는 안티들에게 “무신론을 극복한 화이트헤드의 새로운 유신론 사상을 파악이나 하고 있냐?"라는 식인 것이다.
진보 기독교가 안티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사실 우리가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 힘든 것처럼, 정확히 말해서 진보 기독교인들에게도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실제로 진보 기독교 사이트를 가보면 알겠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철학적 사유와 사변과 내뱉으며 철학적 사변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것을 간과하고 있다. 예컨대 야훼신의 저질스러움에 대해서는 비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들 진보 기독교인들은 안티 기독교에 대해서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어떤 진보 기독교인은 안티 기독교는 보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얄밉고 더 암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타락한 기독교를 개혁 하려고 거창한 계획을 이미 다 세워 놨는데, 안티 기독교인들이 와서 기독교의 뿌리조차 뽑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그 진보 기독교인도 나 자신이 소개했던 안티 기독교를 믿으려 하지 않았던 그 맥락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들이 안티 기독교를 단선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맥락도 다음에서 엿볼 수 있다.
안티 진영의 경우 그 편차들을 좀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종교를 믿는 흐름들을 간과하고 안티들을 함부로 무신론자들이라고 단정하는 점에서 그 나이브함을 엿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티들은 야훼라는 특정신을 거부할 따름이지 무신론자들의 집단으로 규정할수가 힘들다고 본다.
앞서 보았듯이, 진보 기독교인들에게는 안티 기독교가 얄미울 수밖에 없으며 어떻든지 손쉬운 학술 세미나를 열어야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민중신학이나, 화이트헤드 하는 것들은 안티 기독교인들에겐 전혀 별문제꺼리도 안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민중신학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고 부르 짖기에 안티측 기독교인들로선 조금 시큰둥하게 나올 수밖에.
안티 진영의 경우 그 편차들을 좀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종교를 믿는 흐름들을 간과하고 안티들을 함부로 무신론자들이라고 단정하는 점에서 그 나이브함을 엿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티들은 야훼라는 특정신을 거부할 따름이지 무신론자들의 집단으로 규정할수가 힘들다고 본다.
앞서 보았듯이, 진보 기독교인들에게는 안티 기독교가 얄미울 수밖에 없으며 어떻든지 손쉬운 학술 세미나를 열어야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민중신학이나, 화이트헤드 하는 것들은 안티 기독교인들에겐 전혀 별문제꺼리도 안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민중신학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고 부르 짖기에 안티측 기독교인들로선 조금 시큰둥하게 나올 수밖에.
시민단체인가? 동호회 클럽인가?
진보기독교 사이트인 '세기연'은 <세계와 기독교 변혁을 위한 연대>의 줄임말이다. '세계', '변혁', '연대'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걸 보니 전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기독교를 태동시키려는 대단한 시민단체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시민단체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하는 행사들은 학술대회나 세미나를 벌이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진보기독교 사이트인 '세기연'은 <세계와 기독교 변혁을 위한 연대>의 줄임말이다. '세계', '변혁', '연대'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걸 보니 전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기독교를 태동시키려는 대단한 시민단체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시민단체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하는 행사들은 학술대회나 세미나를 벌이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세기연과 다르게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www.gigabon.com)이라는 곳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본래 반기련을 함께 세웠던 주요 핵심 멤버들이었지만, 다시금 반기련을 나와서 종비련을 형성했다. 어차피 서로 파당이 이뤄질 때는 워낙 구구절절 뒷얘기들이 많으니까 그러한 의사소통들의 불협화음 문제들까지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진 않겠다.
그곳을 창설한 핵심적인 사람은 예수평전이라는 책을 펴내는등 예수와 기독교에 대해 온갖 독설을 퍼붓는 골수안티였다. 종비련을 창설하고도 그는 자신의 신념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며 예전의 동지들에게 메시지를 띄워 놓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사람밑으로 진보기독교를 자처하는 정강길씨가 기어 들어가서 칼럼 쓸 자리도 얻게 되면서 그들과 공생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정강길씨는 근본적으로 종비련의 창설자와 극과극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종비련 창설자와 정강길씨는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수 있으며 언제까지 동지로 남아 있지는 않을것이다. 정강길씨는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전술의 한 방편으로 껄끄러운 그와 손을 잡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 매체에 종비련과 반기련을 비교해 놓고는 한쪽은 극찬을 가하고, 다른 한쪽은 극단적으로 폄하를 하고 있다. 문제는 그가 반기련을 가르켜 동호회 집단이라고 폄하 했으나, 그는 등장밑이 어둡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세기연이야말로 동호회적인 스타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과한 것이다. 눈뜬 장님처럼 말이다.
물론 세기연 자체가 학술토론을 벌이는 동호회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는 결코 보질 않는다. 단지 반기련을 동호회로 평가하면서 정작 자신들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계와 기독교 변혁을 위한 연대>라는 그 이름을 볼 때, 이들의 모임을 세계적인 시민운동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그 성격상 좀 그렇다는 얘기며, 그저 클럽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뿐이다. 차라리 애초 ‘화이트헤드 팬클럽 까페’나 ‘정강길 팬클럽’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나오며
우리 사회에 진보 기독교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기존 기독교에겐 또다른 기회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진보 기독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들이 왜 그토록 반기련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엔 진보 기독교가 반기련을 뭐라고 탓하기는 참으로 힘들다고 본다. 왜냐하면 반기련과 종비련이 분리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때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아무개 같은 진보기독 기회주의자가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안티 기독교가 제대로 똑바로 처신하고 있다면, 더 이상 진보 기독교가 지지받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나오기도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뜻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하고나 손을 잡는 점에서 진보기독교는 종비련과 <적대적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해서, 진보 기독교는 안티 기독교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인 것이다. 아마도 ‘괴물’이라는 이 표현을 두고 진보 기독교 당사자들은 기분 나빠할 진 모르나, 그 의미는 반기련에서 분열해 나간 안티세력들의 이익실현과 통일전선전술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즉, ‘적당한 비판’ 혹은 ‘이익실현’이 자신들의 근본 신념으로서 깔려 있는 한, 거기에 새롭고 건강한 대안 기독교를 말할 자리란 근본적으로는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진보 기독교가 이제 자신들의 존재 의미나 한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진보 기독교의 존재의의를 고상한 학술토론을 벌이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면서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 제공에 그 존재의의를 둔다면 나로서도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럴 경우 진보 기독교로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부여잡은 채 그저 지적인 자아도취의 배설만 뱉어낼 따름일 뿐이며, 그들의 논리가 전체 기독교를 설득하기엔 여전히 미흡할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직시되어야 할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진보 기독교는 안티 기독교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인 것이다. 아마도 ‘괴물’이라는 이 표현을 두고 진보 기독교 당사자들은 기분 나빠할 진 모르나, 그 의미는 반기련에서 분열해 나간 안티세력들의 이익실현과 통일전선전술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즉, ‘적당한 비판’ 혹은 ‘이익실현’이 자신들의 근본 신념으로서 깔려 있는 한, 거기에 새롭고 건강한 대안 기독교를 말할 자리란 근본적으로는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진보 기독교가 이제 자신들의 존재 의미나 한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진보 기독교의 존재의의를 고상한 학술토론을 벌이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면서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 제공에 그 존재의의를 둔다면 나로서도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럴 경우 진보 기독교로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부여잡은 채 그저 지적인 자아도취의 배설만 뱉어낼 따름일 뿐이며, 그들의 논리가 전체 기독교를 설득하기엔 여전히 미흡할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직시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또다시 <정강길의 세기연을 어떻게 볼것인가? 두번째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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