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다시 교회 안으로 걸어들어간 이유는...
처음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상당히 많은 의문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구요...
그중에 하나는 왜 많은 <안티>들이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종교개혁 이후, 특히 상당히 유명한 1900년대 초(1904년)의 웨일스 부흥 전후에
상당수의 불가지론자...현재로 치면 <안티>분들이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웨일스 부흥은 연결되어 이어져서 아프리카 가자지구라거나...중국등을 거쳐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교회부흥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안티분들의 눈으로 보자면 <타락하여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교회>요,
아니, 아예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나을 교회겠지요..?
믿는 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주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가 사라진
현재의 교회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바꾸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비록 몇몇 소수의 힘없고 작은 교회들 사이에서나마 선교회를 조직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현재의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요.
오늘은 두가지만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첫째는....개.독교..라는 호칭입니다...이게 상당히 의미를 가진 호칭이거든요...
뭐 기본적으로는 개신교라는 말과 기독교...라는 말을 합쳐서 타락한 교회를 비웃는
호칭으로 만들어진 것이긴 합니다만...그 안에 담긴 속뜻은 만만치 않더군요.
개신교...는 그 한자뜻을 풀이하면 <믿음을 고친>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요, 그것은 인간이 변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
이것은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의미가 오랜 세월 변질되어 왔으며
그것을 깨닫고 올바른 믿음의 자리로 우리의 자리를 옮겼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중세 시절의 주된 교회였던 당시의 가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을 벗어나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려 애쓴 종교개혁의 선진들의 후예라는 의미입니다.
또 기독교는, 크리스트 교라는 말의 음차로서, 기독론...즉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인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을 나타낸 말입니다.
헌데, 종교개혁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교회는 다시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섰습니다.
<개.독교>라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존재로
자신들의 마음대로 바꾸어서 <우상화 한 예수>를 믿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죠.
말 그대로 <개.독교>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누누히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것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 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산상수훈은 현재의 대부분의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것처럼 <예수만이 가능했던>
도덕적인 모범인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인정한 자라면 누구나 다 해야할 <최소한의 일들>일 뿐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하며, 또한 그보다 큰 것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보다 더 큰것도 하리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헌데 실제로 직접 부닥쳐보니 그것은 결코 예수가 말 한 것처럼
<쉽고 가벼운 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던거죠.
스스로의 열심을 가지고 그 일들을 행하고자 했던 이들은 결국 그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이기에>그 일들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치부하고, 예수만을 떠받들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를 우상화하고, 또 그 우상화하는 양만큼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기에 바빴습니다.
자신이 진 무거운 짐을, 자신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조차도 예수께 떠넘기고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 그 짐에 대려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리새인 처럼.
그리고 그렇게 입으로는 천국을 원한다 외치면서,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그러한 그들을 보면서 다른 이들에게...믿지 않는 이들에게 걸림이 되어 그들을 넘어지게 하면서
앞으로 믿게 될 그들, 우리가 흔히 안티라고 부르는 이들조차 천국에 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 말하며, 실상은 매일같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죽이면서
말로는 마치 예수님 때의 바리새인처럼 우리가 그때 태어났으면, 그자리에 있었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산상수훈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은, 예수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고 보내신 성령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리즈 하월즈, 무디, 웨슬레, 조지 뮬러, 주기철, 김익두....
수많은 신앙 속의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그들과 같이 성령께 자신을 온전히 내드리는 삶을 살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고,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뜯어내려는
자신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변할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대체 언제까지 당신이 못박혀야 할,
당신과 나의 못난 자아를 못박아야 할 십자가에 예수님을 대신 못박고
당신이 지고 가야 할 짐을 예수님을 대신 맡기고 살아갈 것입니까.
당신이 지금 쓴 잔이라 여기는 그 잔은 사실 이미 오래전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바꾸어 두신 단 잔임을 깨닫지 못하고 마시지 않으려 버틸 것입니까.
안티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교회를 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비판해도, 예수님을 욕하여도 저는 여러분께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분들께서 욕을 당하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 때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분들께 한가지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 교회가 깨끗해지고...여러분께서 생각하셨던 바로 그,
아름다운 교회가 여러분의 눈에 띈다면,
그 교회를 향해 일요일 아침에 조용히 나아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헌금도, 성경책도 필요없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발걸음과, 그 발걸음을 인도할
여러분의 심령입니다.
그리 해주실 수 있다면, 저는 천국에서 제 자리를 버려서라도
여러분의 자리를 만들고자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번엔 좀 더 나은 행실을 들고서, 여러분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