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영혼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긍휼의 존재이다
우연히 "목회(교회)세습과 관계된 중대형교회 모음(반대측 모임과 목회세습이 교인에 의해 거부된 교회)"라는 글을 '한국교회언론회' 의 인터넷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기고자 들어갔다가 '안티 기독교와의 토론회'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한국교회언론회가, 2007년 7월 19일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기점으로 노골적으로 한국교회를 비방공격하고 박멸(?)하고자 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과의 대화를 시도한 200년 11월 23일 토론회영상이였습니다. 이 토론회에 초청된 안티 기독교 측 인사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의 이찬경회장이였습니다. 반기독교단체는 2000년 6월 개설된 클럽안티기독교를 비롯해 반기련, 디시인사이드 종교갤러리, 기독교비평, 안티예수, 안티뉴스 등 다양합니다. 안티 기독교가 샘물교회 성도의 아프간 피랍 사건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샘물교회 성도 아프간 피랍사건을 계기로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기에 2007년은 여러모로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교회사적으로 의미있는 한해였습니다.
저는 이 '안티 기독교와의 토론회' 영상을 보면서 안티 기독교측의 한국교회에 대한 생각이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기대감의 마음이 아닌, 한국교회의 존재가 한국사회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안티 기독교는 한국교회와 기독교 신앙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인데 이들은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존경받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오히려 지금처럼 한국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샘물교회 피랍사건 이후 한국교회가 더욱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은 안티 기독교측 사람들에게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08년 반기련 회장이 '목회와 신학' 1월호 '반기독교 세력을 극복하라'는 특집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자신들이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유의 첫 이유를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태도'나 '거대한 기업으로서의 교회'보다 '구약성경의 허구성'을 내세운 것을 봐도 안티 기독교의 한국교회 대한 마음은 잘되길 바라는 채찍질의 마음이 아니라 존재자체를 원치 않는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구약성경에 근거한 신약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고 이 신구약 성경에 선 기독교신앙을 부정하는 것이고 이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국교회 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안티 기독교의 궁극적인 한국교회에 대한 마음은 한국교회가 더 많이 잘못해서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토론회때 반기련의 이찬경회장이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사회가 더 불행하게 되었다는 뜻의 말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반기독교시민연합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 저런 글들을 봐도 이들의 마음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한국교회의 기독교신앙의 타종교를 인정치 않는 배타성이나 일부 성도와 목회자의 반도덕적인 잘못에 대한 지적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안티 기독교인들도 아닌 중도측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안티 기독교운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사회운동을 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안티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면을 보이는 것 보다 더한 배타성을 가지고 기독교와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티 기독교'에 대해 한국교회는 영적인 문제로 접근해야지 단순히 도덕과 사회운동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국사회에 한국교회가 속해 있기에 굳이 안티 기독교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도 한국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부드러운 배타성과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의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안티 기독교에 대해 알아갈수록 떠오르는 한명의 성경인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초대교회를 박멸하기 위해 앞장섰던 사도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이였습니다. 지금의 안티 기독교와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없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래도 구약 성경을 서로 인정하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입장에서는 유대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면 유대교입장에서 기독교는 신성을 모독한 박멸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사울은 이런 유대인들 중에 가장 열심으로 기독교초대교회를 박멸하고자 대제사장의 허락을 얻어 다메섹에 숨어 있는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박멸하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사울에게는 당시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높은 도덕성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인과 초대교회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죄를 지어 십자가에 죽은 죄인 예수를 믿는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는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은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신앙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2000년 전 '안티 기독교'인 이였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죄를 지어 죽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체의 신성을 경험하고나서는 '안태 기독교'인에서 '친 기독교인'이 되었고 사도 바울이라는 위대한 신앙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울이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 바울이 된 것에서 볼 때 지금의 안티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마음속 생각과 그들의 논리와 운동이 어떠하던 하나님의 영원구원이라는 긍휼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탄의 영에 속해 있는, 기독교인의 전도과 필요한 불쌍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점에서 대학교 1학년 여름 전까지는 준 안티 기독교인이였습니다. 반기련 설문조사에서도 안티 기독교인이 된 이유로 기독교의 배타성을 제일 많은데 저도 조상제사를 부정하는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과학적인 진화론을 부정하고 비과학적인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과학마저 부정하는 반사회적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적으로 교회의 예배당을 연애당이라고 조롱할 정도로 남녀관계도 자유스러운 것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은 한살 많은 친형이 대학에 들어가서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인데, 이는 친형이 외도로 가정을 풍지박살 낸 아버지에게 아들로서 형이 한마디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된 것이 형에 대한 불신이 형이 믿게 된 신앙마저 꼴사납게 보였습니다. 형이 저녁에 라디오로 기독교방송을 틀어 들을 때도 일부러 타 세상라디오 방송을 들었고 형이 보던 성경도 형이 없을 때 발로 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도 영어공부를 공짜로 하는 것데 대한 댓가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이런 점에서는 '준' 안티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여름 교회 수양회 가기 전 교회 지하 소회의실에서 누가복음 23장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라는 성경공부를 그룹으로 하게 되면서 하나님이라는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제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2000년 사건을 2000년이 지난 지금 영적으로 성령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준' 안티 기독교인에서 '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고 사도 바울처럼 목회자의 삶까지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전 교회를 핍박한 것에 대해서 자신은 '몰라서 그랬다'고 한 말처럼 오늘날 안티 기독교인들도 비록 자기들의 안티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나 행동을 알고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사도 바울처럼 이전의 행동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티 기독교인들의 말에서 한국교회의 잘못에 대한 선지자적 음성보다 하나님의 영혼의 구원에 대한 은혜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우는 사자의 입에 물려 있는 구원이 필요한 불쌍한 영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독교의 배타성을 낮추고 높은 도덕성을 한국교회가 갖추어도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안티 기독교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가능케 함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고 안티 기독교가 겉으로 주장하는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반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중도측에 있는 하나님의 영혼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세상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기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신앙을 타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성이 아닌 타종교를 품을 수 있는 큰 긍휼과 높은 도덕성을 갖게 하기에 신앙의 건강에 대한 바로미터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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