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기독교 비판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을 가토릭에게 뒤집어 씌워라 - 안티기독의 전략

시골마을 주민 2014. 9. 9. 23:29

가토릭(가토릭 신자)은 역사적으로 과오를 많이 저질렀다.

십자군 전쟁때 이슬람에게 행한 잔인한 행동과 비잔틴 공격, 중세의 종교재판, 신대륙에서의 만행 등등...

그러나 가토릭은 이러한 역사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한 이미지 쇄신을 하여 가장 호감도가 높은 종교가 되었다. 까닭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를 한 것과 약자의 편에 선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에 개신교회의 신뢰도는 민주화 이후 많이 저하되었다.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 개신교회의 신자 감소와 가토릭의 비약적 성장이다.

  

가토릭은 조선말기 일제의 침탈과정과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가장 소극적이었다.

일제 침략에 맞서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에게 가토릭에서 한 행동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3.1운동에도 참여도가 가장 낮았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천주교인은 한명도 없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순응하고 협조했다.

일제말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가토릭은 일제와 갈등을 빚지 않았다. 순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압도 받지 않았다.

가장 거세게 저항한 것은 개신교회인데 이 때문에 회유와 억압의 대상이 되었고 억압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가 끝까지 저항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하거나 수감생활을 했다.

그런데도 친일 종교로 가장 지탄을 받는 것은 개신교회다.

안티기독들은 마치 개신교회가 자발적으로 신사참배를 하고 친일을 한 것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는 산업화가 되며 고도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시기다.

이 시기에 개신교회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그러나 군부독재로 민주주의가 고사상태에 이르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억압되고, 언론의 자유 등이 억압되며 인권이 탄압될 때 NCC계열의 일부 진보 기독교인들을 제외한 주류 기독교 지도자들은 독재에 협력하거나 침묵을 지켰다.

이때 가토릭은 약자의 편에 서서 민주화 투쟁에 적극 나섰으며 이 때문에 가토릭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불식되고 가장 호감도가 높은 종교로 환골탈태하였다.

 

'90년대부터 개신교회는 각종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가장 큰 원인은 컴퓨터의 보급이다.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나도 곧 잊혀졌다. 그러나 컴퓨터가 보급되고 PC 통신을 거쳐 인터넷으로 정보화 시대가 전개되면서 정보는 저장되고, 공유되고, 신속하게 확산되게 된다.

교회의 조직과 제도상 가장 교역자의 숫자가 많고 일반인과 접촉 빈도가 높고 개교회 주의인 개신교회는 내부 갈등과 일탈행위가 일어나는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장 열성적지만 신자 개개인이게 가장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는 것 때문에 피로를 느껴 이탈하는 신자도 많게 된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선교와 전도가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호감도가 낮은 데다가 일탈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지도자도 많다 보니 비판의 표적이 된다.

개신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자들도 많아져서 안티기독교가 대두되게 된다.

 

안티기독교는 개신교회의 위상을 실추시켜 그리스도를 믿는 길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이미 믿는 자들을 실족시켜 신앙에서 이탈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 방향은 교리의 왜곡이나 비방, 지도자와 신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나 범죄행위의 적극적 홍보, 일제와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부각, 전통문화와 충돌하는 비민족성 등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에 근거한 것만으로는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했는지 적극적인 조작과 왜곡된 자료를 유포하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과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속고 있는 것이다.

===================================================================

 

임진왜란과 코니시에 대해서는 안티들이 교회를 공격하는 데 이용한 대표적인 조작과 왜곡의 사례다.

성결신학교(지금의 성결대) 김임규 교수가 1986년에 교내 논문집에 발표한 "임진왜란을 통한 기독교 전래의 고찰"이라는 논문의 일부를 거두절미하여 인용하고 왜곡하여 인터넷 상에 유포한 것을 시작으로 이것이 덧붙여지고 왜곡되어 김임규 목사가 2010년 순복음교회서 이를 주제로 설교한 것으로까지 진화한다.

어떤 자료에서는 프리젠테이션으로 설명하고 청중들의 반응까지 나온다.

김임규 교수의 논문에서 "일본의 조선침략은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역사가 히데요시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졌다"라고 주장했다고 안티들은 왜곡하고 있으나 필자가 위의 논문을 구해서 분석한 결과 김임규 교수는 토요토미가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인용한 것인데 안티들은 마치 김임규 교수가 임진왜란이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처럼 주장한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순복음 교회 신앙 상담에서 십자가 군기를 앞세운 코니시의 군대에 대적하여 이를 물리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교회측의 답변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는 안티들이 상담 게시판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조작한 것이 밝혀졌다.

<참조 필자의 블로그 자료 : http://blog.daum.net/antistudy/695>

 

이것에 덧붙여져서 2010년 순복음 교회에서 김임규 목사가 한 설교까지 등장하게 된다.

"코니시는 십자가 군기를 높이 든 하나님의 군대이고 이에 맞선 이순신장군은 불신자로 지옥권세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군대인 코니시 군대에 대적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임규 교수는 목사가 아닌 장로였고 '2004년에 작고하신 분이다.

그런데 목사가 되어 2010년에 순복음 교회에서 설교를 한 것이다.

안티들이 창작한 최대의 코미디인 것이다.

==================================================================

  

분명 임진왜란은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치적 경제적 목적과 개인적 야망과 망상이 결합되어 일으킨 전쟁이다. 그가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의 지원을 이끌어 내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고, 일본에서 선교를 하는 예수회 입장에서는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예수회와 가토릭에게 임진왜란 발발의 책임을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이를 강조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임진왜란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사주와 후원을 받고 영감을 얻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켰다고...." 이렇게 되면 임진왜란에 대한 책임 부분에서 토요토미와 일본의 책임은 작아지고 희석되게 되는 것이다.

 

개신교회의 친일을 비판할 때 개신교회에 결정타를 입히기 위해 자발성과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하다 보면 이를 강요한 일제의 책임은 물타기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안티기독들은 자료를 왜곡하고 조작하여 가면서까지 한국 기독교를 음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토릭을 향한 공격의 화살은 비껴난 것처럼 보이지만 안티기독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가토릭에게도 공격의 비수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

 

참고 자료 : 1999년 무렵 작고한 성결신학교 김임규 교수(장로)가 2010년 순복음 교회에 목사가 되어 설교했다는 자료

 

출처 안티바이블 : http://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ree_talk&wr_id=83256

 

작성일 : 11-09-18 22:38

임진왜란이 야훼의 뜻이었다고 최초로 주장한 인간

 

글쓴이 :  케일라    조회 : 4,510

 

김임규 -

1986년 4월 성결교신학교 논문집 14호

에 실린 자신의 논문 "임진홰란을 통한 기독교의 전래에 관한
고찰" 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왔다는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큰 일을 한 것'으로 '일본의 조선침략은
기독교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라고 단언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히데요시를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한 전 신학교수 김임규(金任圭)란 자가 있다.

김임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행한 설교 내용 전문.(2010년 초)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순신하면 무조건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믿는 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연 이순신이 고니시 장군보다 주님 앞에 떳떳할까요?

고니시 장군은 왜군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의 수하 군대는 늘 십자가 군기를 높이 들고
조선의 전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조선군과 맞섰습니다. 

이순신은 어떠했나요? 이순신은 우리 주님의 군대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요, 적일 뿐이었습니다.

중간생략(편집자)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용감하게 조선 전장에서 고귀한 희생을 무릅쓰고 피흘려 싸우신, 비록 왜군이셨지만 참 주님의 종이셨던 고니시 장군이 어떤 분이셨는지 사진과 함께 살펴봅시다.

고니시가 비록 왜장이지만 순교이 피를 흘리러 왔는데 저희 조상들이 그에게 칼을 들이댄 것은 잘못한 것입이다.
조선군을 무찌르고 있는 고니시 장군 군대를 잘 봐요! 붉은 십자가 군기를 앞세워 주님의 군대임을 당당히 밝히고 깊은 신앙심으로 조선군을 무찌르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대승을 거두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운 주님의 군대를 죽인 조선군은 사탄이 아닐까요? 십자기 앞세우고 순교의 피를 흘리러 오신 분들께 칼을 들이댄 무지한 이순신의 휘하 장졸들 즉, 저희조상들 정말 잘못된 것이죠? 

중간생략(편집자)

 

주님의 대장군! 고니시 장군이 다시 봐지지요? 이순신은 주님 앞에서는 적장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순신도 다시 보자구요! 우리 믿는자들이여! 고니시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중간생략(편집자)


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던 고니시 덕에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이교도 괴수 이순신을 도륙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십자군 전쟁은 하느님께서 명하신 바 있는 일이라도 중간에 신앙심을 잃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