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안티기독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반기련이 시련에 봉착했었습니다.
아마 어느 목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고 한 모양입니다.
운영자는 고소를 당할만한 글들을 삭제하느라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2003년 개설된 반기련 사이트는 안티기독의 중심역할을 수행하였고 다수가 이를 공감했습니다.
2007년 아프칸에서 샘물교회 봉사단이 탈레반에게 피랍되었을 때가 온라인상에서 안티활동의 정점이었습니다.
이 무렵이 반기련 게시판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내부갈등으로 인한 역량이 있는 안티들의 이탈, 시민단체를 표방하면서도 동호회 수준의 저질 게시물의 범람, 반기독교 이념 하나로 결집된 느슨한 연합결집체라 이런 난관을 타개하여 나갈 운영진의 추동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의 환경이 바뀌면서 예전처럼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포털에서는 게시중단이 번번이 일어나게 되고, 권리침해를 당했다는 당사자들의 고소가 이어지며 안티들은 스스로가 몸조심을 하게 됩니다.
자기검열을 하면서 예전처럼 무한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자 안티하는 재미가(?) 없어지면서 반기련에 올라오는 게시글들이 급감하게 됩니다.
이제 포털이나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안티기독의 활동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티기독교 활동 자체가 위축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SNS 환경에 적응하여 활동하고 있고, 동호회나 지역모임 상품 선전 사이트 등 일반 카페 등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안티활동은 활성화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안티기독임을 분명히 하고 그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활동이 감소하였을 뿐입니다.
아래는 다른 안티사이트에 올라온 자아비판적인 글입니다.
공감하는 바가 커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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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춘 안티들 |
글쓴이 : 바람처럼 날짜 : 2014-08-17 (일) 16:32 조회 : 430 ![]() ![]() |
성장을 멈춘 안티들
참으로 오랜만에 안티계의 대표를 자처하는 사이트에 가보았다. 아마도 6~7년 만이다.
낯익은 닉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어떤 얘기들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웠다. 6~7년 전의 그들의 글을 다시 읽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건너며 쭈욱 훑어보고서는 더욱 놀라웠다.
똑 같은 소리를 6~7년 내내 반복하고 있다니...?
물론 안티의 대상이 정해져 있으니 그에 대한 비판의 내용도 같을 수 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이 세상이나 인간에 관한 이해가 확장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그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이전과는 다른 이해와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기독교 경전 귀절을 인용하면서 도대체 말도 안된다는 비판을 주로 하는 원로급 안티가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에는 그것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종교의 것이든 그 경전이 말도 안되는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 한 귀절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경전에 관한 한, 이런 자료는 쌓이고 쌓여서 넘쳐날 지경이다.
여기에 이러저런 귀절이 말도 안 된다고 덧붙이려 해봤자, 이미 누구인가 먼저 지적한 귀절일 뿐이다.
이런 내용을 읽고 감탄하는 것은 초보 안티들이다. 맞아! 말도 안 되지! 야, 이런 것도 있었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옛날에 다루었던 귀절들을 놓고 재탕까지 하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 행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 겅전의 내용은 터무니 없다. 경전에 나타난 신은 인간은 커녕 짐승만도 못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 것을 믿는 개독들은 뇌가 없는 좀비나 같다.
그래서?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개독들 중에 세상에 떵떵거리고 사는 자들이 부지기수일 뿐 아니라 대텅까지 해먹은 넘들조차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된다면 뇌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멀쩡한 뇌를 가지고 어떻게 그런 터무니 없는 것들을 믿을 수가 있는가?
여기에 이르면, 관심의 대상은 당연히 경전 귀절이 아니라 그런 것을 믿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을 믿는 인간들의 공통성이 무엇인가?
합리적인 이성을 포기하고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왜 저런 터무니 없는 것에 매료되는 것인가?
여기에 이르면, 문제의 핵심은, 말도 안 되는 기독교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관심의 대상은 당연히,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다.
위에 예로 든 안티가 올린 최근의 글에, 자지 200개를 잘라다 주고 왕의 사위가 된 다윗의 이야기가 있다. 신이 함께 한다는 자의 행위가 이러니 얼마나 웃기는 신이냐,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경전 내용이 터무니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오히려 좋아서 믿는 인간들이다. 신이 함께 하면 200명의 자지를 잘라도 벌은 커녕 왕의 사위가 될 수 있고, 나중에 왕도 될 수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도 신이 함께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시장이랍시고 서울시를 제것처럼 신에게 바친 전과?범 MB는 대텅이 되고서는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터무니 없는 경전 내용은 그것이 터무니 없기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다. 기독교를 비판하려면, 경전 귀절의 터무니 없음이 아니라 그 터무니 없음이 갖는 악마적인 마력에 이끌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자들의 공통성은 배타적인 이기심과 다른 인간에 대한 중오심, 그리고 욕구의 크기에 반비례하는 무력감이다. 이런 자들이 기독교 경전을 보게 되면, 유아시절의 "전지전능의 환상"을 만끽하게 된다. 기독교의 신이란, 돌에 걸려넘어져 울고 있는 어린 자기를 일으켜 세워주고 돌에게 때찌를 해주는 든든한 아버지와 같은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세상에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자신의 힘만으로 정상적이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서는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가진 인간에게는 기독교의 신은 글자 그대로 구세주이다. 기독교 경전의 귀절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그것을 믿는 사람의 배타적인 이기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멸시와 증오, 그리고 불의든 범죄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구를 채우려는 탐욕,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비겁함 등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나 의미가 있는 일이다. 경전 귀절만을 놓고, 말도 안된다는 소리를 수년에 걸쳐 반복하는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가?
그러면서 마치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 처럼 혼자 좋아하는 것은, 한풀이나 유아적인 자기만족 이상의 무엇일 수가 있겠는가?
성장을 멈춘 안티들, 그들의 관심은 기독교의 경전이, 기독교의 신앙이, 기독교인의 행태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 뿐이다. 그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커녕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다. 기독교인들도 인간이다. 기독교인들은 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저 예전에는 안티들 스스로 휴머니스트라고 했었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기독교신자들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안티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안티계의 대표를 자처하는 사이트에 가보았다.
거기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인간인,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인 안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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