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안티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20년이 되어 간다.
처음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며 네띠앙 게시판을 접하게 되었는 데 이곳에 올라온 우리나라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과 비난을 한 게시물들을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간곡한 마음으로 이들을 설득하려고 댓글도 달고 게시무도 올렸는 데 돌아오는 것은 악플과 비방이었다.
이미 네띠앙의 게시판은 안티기독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기련의 전신인 안티기독교 사이트( )가 라이코스에 개설되었고 이곳에 수많은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당시 이 안티기독교 사이트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내 주장을 펼 수 있었다.
비록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안티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야유를 당하지만 맷집이 좋고 담력이 강하면 견딜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찬 네티즌들은 대응역량이 부족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게시판을 떠났으며 이 빈자리를 안티들이 차지하여 나중에는 안티들이 독점하는 사이트가 되었다.
안티들은 자신들의 영역(사이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포털의 게시판으로, 당시에 활성화되어 있던 각 언론사나 사회단체 노동단체 진보단체의 게시판으로 진출하여 반기독교 주장을 펼쳐나갔다.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그런곳까지 진출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안티기독교를 포교(?)하였다.
서프알바(옛 진보넷 안티)라는 걸출한 안티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진출하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정치나 性과 관련된 제목을 붙여 네티즌들을 유인하여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비방하는 게시물에 접하게 하거나 링크된 게시물에 접하게 하는 방법으로 반기독교 활동을 하였다.
그의 활동은 노무현 이회창후보가 대선에서 맞섰던 2002년 대선때 한겨레 게시판에서 맹위를 떨쳤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보성향의 네티즌으로 자처하며 개신교회를 안티하는 것이 진보요 혁신인 것처럼 주장을 펼치고 관심을 끄는 정치 현안의 제목을 붙여서 관리가 느슨한 진보단체의 게시판에 잘를 올리고 이곳으로 링크되도록 게시물을 올려 조회수를 늘렸다.
그는 어느곳이든 네티즌들이 찾는 곳에 자료를 올렸고(딴지일보 등 진보언론과 정부부처 및 지자체 게시판, 민노총 전교조 등의 게시판, 경향신문 한겨레 지방지 등 언론사 게시판 등) 이러한 맹활약은 3천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여 15000안티들이 있는 반기련 게시판의 접속수를 능가하는 조회수를 기록하 였다.
그는 현재도 서프라이즈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 20년이 넘는 안티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에 발생한 분당 S교회 단기팀이 아프칸에서 탈레반에게 피랍된 사태는 각 언론사 게시판이나 포털의 게시판에 탄광 갱내에 포화되어 있던 메탄가스가 불똥만 튀면 폭발하듯이 안티기독들의 관심을 폭증시켰다.
디시인사이드 종교갤럴리, 다음 아고라의 종교토론방 국제토론방 자유토론방 등과 네이버 등의 포털과 반기련 등 안티사이트에서 엄청난 양의 피랍인질들과 교회를 비방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디씨 종갤을 예를 들면 피랍보도 다음날인 2007년 7월 21일 하룻동안에 4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는 단일 게시물로 2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게시물이 게재되기도 하였다.
활동적인 안티들은 오토마우스를 이용한 조회수 조작으로 게시물을 베스트로 올리거나 관심을 끌어 조회수를 더욱 증가시키는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피랍인질들의 무사귀환울 바라는 다수 국민의 여론과는 달리 이들의 해외 선교와 봉사활동을 비방하고, 이들의 귀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중지를 청원하고, 탈레반에게 피랍자의 신상정보나 선교와 관련된 활동상황과 왜곡된 자료를 탈레반이나 알자지라 등에 보내 탈레반을 자극하여 인질석방에 난항을 겪게 하였다. 또 이들이 순교하기를 바란다거나 참수되기를 바란다는 등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극단적인 저주와 악담의 게시물과 악플을 올렸다.
또한 국내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해 이들이 정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환비행기도 거절하고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하면서 아프칸에 입국하였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거액의 석방금을 거론하며 세금을 이들 구출에 투입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전파하였다.
안타깝게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도 이들의 순교를 축하한다느니 승화를 축하한다느니 하는 아유를 퍼붓고 인질 모두가 참수되기를 바란다는 악플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때가 안티기독교 활동의 전성기였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2009년 조두순 사건때 또 한번 빛을 발한다.
누구나 이용가능한 교회 화장실에서 사건이 발생되었다는데서 시작하여 범인 조두순을 목사로까지 조작하였고, 조두순이 목사이기 때문에 가벼운 실형을 받게 되었다고 하며 교회를 범죄집단과 범죄옹호 집단으로 몰아붙이며 비방하였다.
또 사이코패스 범인들을 기독교인으로 조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안티들의 노력으로 교회가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거듭되는 안티기독들의 허위왜곡가짜뉴스의 조작 전파와 거짓과 왜곡된 주장으로 개신교회의 교리와 역사를 비판하는 게시물은 사실이 규명되면서 안티들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켰다.
또한 비속어와 욕설을 사용한 활동, 잔인할 정도의 인신공격(기독교인 뿐 아니라 의견이 다른 안티들끼리도) 등은 안티기독교 단체를 출범시킬 때 표방한 시민단체가 아닌 동호회 단체로 머물게 하였다.
또 안티들끼리 갈등으로 인한 내분과 이합집산은 안티활동의 추동력을 떨어뜨리며 2010년 무렵부터 그 활동이 퇴조되기 시작하여 2015년 이후에는 오프활동 한번 제대로 못하는 단계가 되었다.
여기에는 인신공격에 대하여 피해 당사자들이나 단체에서 적극적인 법적 조처를 취하여 의법조치가 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 이를 의식한 자기검열이 활동수위를 조절하고 흥미를 상실하게 하는 것도 일조하였다.
금년(2019년) 3월과 5월에 다음 아고라의 토론방이 한겨레 커뮤니티의 토론방이 각각 폐쇄되었다.
포털과 언론사의 토론방으로 가장 많은 접속자가 있었던 곳인데 SMS 환경이 변화하며 게시판 카페
블로그 기사펀 토론방 등의 활동이 퇴조하여 접속자수가 줄어들게 되자 포털과 언론사는 폐쇄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토론방이 폐쇄되면 게시물을 접속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토론방에서 올라왔던 수많은 자료들과 주장 토론내용들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필자는 안티기독교를 연구하며 PC통신시대의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 연구에 제약을 받고 있다.
후일 누군가가 새천년 초기에 활성화되었던 반기독교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틀림이 없이 자료부족을 겪을 것이다.
필자는 비록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추한 면이 드러나고 힜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기 때문에 이를 사료(史料)로 보존하여 다음 연구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행각한다.
막상 자료를 수집하려 하니 난관이 많았다.
게시판의 검색기능이 대부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활성화되어 검색으로 자료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 데 게시물이 많고 시간이 제약되어 있어 전수조사는 불가능하였다.
더우기 게시판이 문을 닫는 시기가 필자가 일해야 하는 영농시기와 겹쳤다.
주경야독하는 자세로 일을 하는 사이사이 토론방에 접속하여 무작위로 게시물에 접속하여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게시물을 저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수집된 게시물을 농사일이 끝나며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봄철 쑥이나 돌나물 냉이 등을 캘 때 캐는 데는 많은 시간이 요하지 않지만 이를 다듬는 데는 캐는 것보다 몇배의 시간이 들듯이 정리한다는 것은 수집하는 몇배의 품이 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언제 정리가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내 힘이 닿는 한 이미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고, 아직 출입문이 열려있어 드나들 수 있는 곳에서는 더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할 것이다.
또 안티기독교 연구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를 찾아 그간 필자가 수집한 자료와 정리한 자료를 넘겨주며 필자가 20여년간 관심을 가졌던 안티기독교 연구활동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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