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칸 탈레반에 의한 샘물교회 단기 선교 봉사단의 피랍사태는 한국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태는 반기독교 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을 온라인상에 결집시켰고, 각 포털에 수없는 악플들이 올라왔습니다.
대부분의 악플러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를 잘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의 속성상 젊은 청년층이 이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아프칸 인질 피랍사태를 학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가 한 20대 초반의 악플러('86년생) 청년을 만나 대담을 한 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 청년은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다른 악플러들과 달리 비속어나 속된 표현을 쓰지 않고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주장을 전개하는 네티즌이었습니다.
그의 미니 홈피를 방문하여 보면 그가 일상에서는 다른 젊은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청년이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고,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조성돈 교수와 이 청년이 뉴스미션이라는 인터넷 매체의 중재로 대담을 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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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기독교 악플러, 목사를 만나다(1)
데스크승인 2007.09.10 08:30:22
하민지 | shiny_signal@newsmission.com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프간 피랍사태가 종결된 지 약 열흘이 지났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불거진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에 대해 국민들의 지탄과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빚어낸 폐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회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한편, 이번 아프간 사태와 관련, 감정의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쏟아내는 반기독교적인 비난과 과도한 악플들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논란을 빚어냈다. 지난겨울 네티즌들의 무차별적 악플에 시달린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 사건 이후로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악플에 대한 ‘수위’ 문제가 또 다시 화두에 오른 것이다.
‘악플’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안티기독교와 기독교. 이들의 첨예한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아니면 서로의 오해로부터 비롯된 상황인가?
지난 8일, 여의도에 위치한 ‘뉴스미션’ 사무실에는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 곧 기독교인과 안티기독교인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와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박대범 씨가 그들이다.
조성돈 교수는 지난 4일 아프간 피랍사태 관련 자료집 ‘한국교회와 선교에 주어진 새로운 도전’의 편집을 책임졌으며, 박대범 씨는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클럽안티기독교’ 카페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 다음의 네티즌 토론광장 ‘아고라’에서 ‘死神six’라는 아이디로 아프간 피랍 사건과 관련한 글을 올려 많은 안티기독교인들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대담은 뉴스미션의 젊은이 페이지인 ‘공감2030’ 김범인 편집장의 진행으로 약 150분 동안 이루어졌다. 긴 시간동안 두 사람은 차분하고도 솔직담백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대담내용을 정리 요약한 것이다. 편의상 조성돈 교수는 ‘목사,’ 박00 씨는 그의 다음 닉네임을 빌려 ‘사신(死神)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편집장: 우선 아프간 피랍자들이 돌아 온 것에 대한 양측의 소감이나 의견이 듣고 싶다.
목사: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협력했던 사람으로서 그들이 살아온 것에 대해 우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돌아가신 분들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다. 조금 전 배형규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그 분의 어린 딸이나 유족들을 보며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신: 그들이 살아 돌아옴으로써 국가나 아프간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고 피해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재회의 감동만 얘기할 뿐, 다른 문제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음은 물론 문제들은 더더욱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들이 불만스럽다.
편집장: (사신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서 아직도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사신: 아프간의 많은 한국 사람들과 생계형 기업, 그리고 군인들이 위험에 처했다.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몸값을 지불했다는 추측들이 있다. (물론 그들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국가나 다른 국민들의 입장으로는 손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목사: 어찌됐건 사람이 ‘산다’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나라는 비슷한 경우 피랍된 사람들이 풀려났을 때 국민들이 매우 기뻐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번 경우 우리나라는 국민들 사이에서도 매우 극명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풀려남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피해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식으로 여론이 몰아져갔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아쉬운 것은 국민들이 ‘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타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지 않은가. 국민의 한 사람을 구하는 국가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람보’같은 영화를 보면 여러 사람이 희생되더라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사신: 그와 같은 영화들의 경우는 국방의 의무를 진 군인이고, 이번에 피랍되었다 풀려난 이탈리아 기자도 사실 확인을 위해, 자국을 위해 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피랍자들은 국가에서 말렸는데도 아프간에 갔으며 국민의 자격이 아니라 기독교 단체, 한 교회의 자격으로 간 것이다. 국가가 기독교라는 단체를 포함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세금도 내지 않는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그들을 구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상사를 당했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안기면서까지 그들을 구해야 하는가?
목사: ‘누군가가 유괴되었는데 유괴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왜 위험하게 밤길을 다니다 험한 꼴을 당하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피해자가 죄인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는 그들이 세계에 전해 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아프간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국가에서 전도한다는 것은 평생 해도 한 명 할까 말까다. 사람들이 아프간에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봉사활동 뿐이다. 인류애, 박애정신으로 접근을 해 보면 그들의 행위가 전 인류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이 오지로 나아가 봉사활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 대한 다른 시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신: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 이번에 탈레반과 협상하는 모습으로 국가 위상이 실추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 교민들이 그동안 노력하여 아프간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는데 일부건 다수건 어쨌든 (이번 사태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한국에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건 안 좋은 것 아닌가.
편집장: 결과론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은 결과를 알 수 없었다면, 그들의 의도 자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해외 선교가 금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신: 샘물교회에서는 분명 봉사활동이 아니라 단기선교형태로 보냈다는 자료를 봤다. 피랍자들 스스로도 선교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의료봉사를 하러 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없어 성지에 가서 기타를 치고 찬송가를 불렀다. 기독교의 선교적 목적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의 의도나 원인이 좋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한 정부나 국민들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아프간으로 가는 것에 대해 경고를 했고, 현지에서도 위험하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구태여 가지 않았는가. 그들이 아프간으로 간 원인이 인류를 위한 발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목사: 그건 오해다. 작년 모 선교단체가 추진했던 대규모 ‘평화대행진’ 사건과 이번 사건이 오버랩 되고 있는 것 같다. 한민족복지재단에 공식적으로 3월에 정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왔고,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제재가 없었다고 알고 있다. 아프간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가지 말라는 ‘권고’ 수준 이었다.
편집장: 권고를 어긴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목사: 그들이 져야 하는 ‘책임’이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정서적 책임일 것이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목사: 단기선교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선교의 의미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단기 봉사’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오지로 나아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봉사를 한다. 청년들이 놀러갈 생각 안하고 자비를 들여 어려운 사람을 돕고 오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봉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돌아온 후에도 계속 그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오지로 가서 현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봤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중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교육만 잘 된다면 우리나라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사신: 여전히 개신교적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신교에서 이만큼 하니까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 봉사를 가는 사람들의 계기가 ‘개신교’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별 다른 교육 없이 이벤트적인 형태로 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 없이 가는 사람들도 결국엔 교회의 이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비난 받는 것이다.
목사: 보통 단기봉사를 가려면 6개월 정도 팀원들이 함께 공부를 한다. 봉사를 가려는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생활, 언어 등에 대해 공부하고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지 연구한다. 그러나 지적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욕먹는 상황은 조금 억울하다(웃음).
또, 교회의 다른 면도 좀 봐주었으면 좋겠다. 교회가 자주 듣는 말이 ‘왜 봉사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구호단체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단체이고 사회복지사의 50~60%가 기독교인이며, 사립봉사기관들의 80~90%가 기독교단체라는 통계도 있다. 성경에 나오듯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잘 밝히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개신교가 너무 지탄만 받으니, 속상한 마음에 (이런 내용들을)밝히고 싶을 때도 있다(웃음).
편집장: 선교사나 단기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신: 아프간의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병원, 학교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필요한 것을 준다는 것을 미끼로 ‘우리가 이것들을 주니 종교도 가져가라’는 식의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봉사를 빌미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배척이라고 생각한다.
목사: 바로 그것이 오해다. 중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가끔 단기봉사팀이 객기를 부려 그런 일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 때문에 선교사들이 속상해 한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게 만든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신: 그러나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교계의 대책은 도대체 무엇이 있었나?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대축전에도 참가하지 않았나.
목사: 평화대축전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은 후회되는 부분이다. 큰 단체가 주관했지만, 일반적인 선교단체들은 대부분 말렸다. 평화대축전과 같은 것이 기독교계의 일반적인 정서는 아니다.
사신: 그렇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 사람들도 ‘교회’라는 하나의 이름에 묶여있다. 그 책임은 개신교에서 교인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교육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목사: 개신교 내의 교회라는 단체는 각자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상당히 민주적이다. 마치 네티즌들과 비슷하다. 통제가 안 되지 않는가(웃음). 여러모로 억울한 점은, 그런 식으로 ‘튀는’ 사람들에 대한 지탄이 개신교 전체로 온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결코 교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사신: 일부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다. 우리나라 내에서의 전도행위도 마찬가지다.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 잡힌다. ‘주류’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독교가 개선할 부분이 있는데도 그대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문제다.
‘소수’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교회나 교인들이 너무나 많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남들에게 베풀기 전에, ‘수신(修身)-본인을 다스리고, 제가(齊家)-‘교회’라는 집안을 다스려야 하는데 개신교는 그걸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회피하는 걸로 보인다.
목사: 그런 교회는 꼽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교회가 수 만개 있다. (문제가 있는 교회가)많은 수 존재한다고는 하나, 성도의 비율로만 따져도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쳐야 하는 부분이다.
편집장: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단군상 등 타 종교의 동상이나 건축물들을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개신교는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시작이 같아도 끝이 다르면 다르다고 본다. 심지어는 이슬람의 알라도 기독교 여호와의 다른 이름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목사: 우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든 것들이 다 유대교 사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뿌리가 같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세계 종교학계의 ‘연구 대상’ 중 하나이다. 그들은 한 나라에 뚜렷하게 3대 종교가 있는데 별 다툼 없이 지내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신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 ‘다름’을 어떻게 관용하고 사는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신교가 다른 종교와 다르게 봐달라고 바라는 것은 그것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너와 나는 적이다’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편집장: (사신에게) 오히려 안티기독교인들이 배타적으로 개신교의 신념을 배타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 같은데.
사신: 개신교를 배타시키자는 이유를 보면, 개신교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고 종교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고는 하나 ‘개신교’라는 것은 절대적인 신앙이지 않은가. 수많은 분파가 있다는 것은 분명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로서 갖는 가치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안티들이 개신교를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한국의 개신교가 싫다는 것이다. 싫은 이유에는 물론 각자 개인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개신교를 무조건적으로 배타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 때문에 배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정당한 배타라고 생각한다.
목사: 우리가 교인들의 인성을 훈련시키는 부분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80년대부터 비로소 성장했다고 본다. 이제 겨우 이십 년 사이에 이 정도 성장한 것이다. 이제부터 많은 것들이 변화될 것이다.
편집장: 서로 대담을 해 본 소감이 어떤지.
사신: 개신교에 대해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우리의 입장과 주장을 말하다 보니, 개신교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을 뿐,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사: 교회에 대한 오해 같은 것들은 좀 풀렸으면 좋겠다. 교회에 대한 지적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개신교 전체의 잘못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식의 고리는 좀 끊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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