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기독교인물들/타종교인 안티들

자칭 강성안티기독 제비똥의 종교관

시골마을 주민 2017. 7. 31. 23:44

'제비똥'은 한겨레 토론방 등에서 한때 활발한 안티기독교활동을 하였던 인물입니다.

제비똥은 강성안티로서 안티기독교 활동을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불자가 된 이유를 말합니다. 제비똥은 기독교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불자 안티기독인 '제비똥'의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발언입니다.


이치에 반하는 안티는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거대한 조직에서 행하는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사람 입니다.
요즘 비기독인도 교회에서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걸 압니다.
그들은 단면만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지지하는 이들이 제2의 기독교도가 될 확률은 높다고 볼수 있겠지요.


저는 이러한 사람들한테 묻고 싶은게 한가지 있습니다.
신의 존재보다는 학창시절 세계사 공부를 똥구몽으로 했냐고요.
기독교출현이후 근세까지 좋은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음을
세계사는 그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세계 지역에 갖가지 영향을 낄칠만큼 키운 사람들 마져도요.
기독교가 사람들과 친근하게 가까히 간 기간은 100여년도 안 됐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던지 박애정신 평화를 갈망하는 신앙이라든지 어느것 하나 인류에게 유익하게 조성하지 못했던 종교였다고 확신 합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종을 뒤 바꿔 놓고 온 갖 전쟁을 다 일으킨 종교가 기독교라고요. 불교나 유교를 종교로 생각해야 될지는 모르지만 이같은 종교는 정치력으로 이용한적은 있으나 전쟁까지 내몬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말이죠. 여기서 얘기를 다 못합니다. 하도 사악한 일을 많이 벌려서 그렇습니다.
어쨋든 지금도 이들에 의한 전쟁은 크든 작든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희생자나 불우한 사람들 보면 병주고 약주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 돕는다는 말로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한국에서도 이런 유사한 자선행사를 하고 있으며 결국 자신들의 신앙속에 가두려는 하나의 음모로 해석 됩니다.


쓰나미 희생자들 한테는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벌어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고요.
이라크인들이 기독교를 안 믿어 전쟁참화에 처절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들이 야훼를 왜 안 믿어요 이름만 회교라 일컬으지 그것도 야훼를 알라라고 부를뿐 엄밀히 얘기하면 기독교나 다름 없다고 볼수 있지만 종파가 달라 저짓 한다고 보면 되지요.
이러한 발언을 놓고 보면 저들은 항상 일부론을 주장 합니다. 입에 뱄어요
일부 일부하는 말을 절대 일부가 아닙니다.
그러한 목사가 주관하는 교회신자들이 다 이러한 영향으로 세상을 보고 사는 겁니다.
어떻게 일부로 판단해야 합니까.
그래서,
안티 합니다.
남이 벌리면 간통이고 자신들이 행하면 내피림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드리는 족속 입니다. 개중 그런것을 인정 안하는 목사들도 있겠지마는 그건 야훼의 지시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성서엔 분명 피가름을 야훼의 명령으로 받아 드립니다. 이게 그들의 교린데 잘들 하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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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산이 겨자씨앗 속에 들어가고 四大海水가 하나의 털구멍 속에 들어 간다.]

이 말은 출가하지 않고 부처가 됐다는 유마거사의 불가사의品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때 살았던 李勃(이발)은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였다.
사람들은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여 그를 이萬券(만권)이라 불렸다.
어느날 이발은 유마록을 읽고 눈에 보일까 말까하는 겨자씨앗에 히말리아 산자락이 다 들어가고 세상 바닷물이 하나의 털구멍속에 다 들어가도 끝이 없다는 말에 꽉 막혀 버렸다. 이발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여산 業宗寺에 들러 스님을 찾아가서 여쭈었다.

"
유마경에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고 사대해수가 하나의 털구멍 속에 들어간다]는 글이 있던데 그렇게 큰 산과 넓은 바다가 겨자씨나 털구멍처럼 작은 것 속에 들어 갈수 있습니까?" 물었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반문하기를,

"
사람들이 그대를'이만권'이라 한다지? "
"
"
"
그 까닭이 무엇인가? "
"
제가 이제까지 본 책이 만권정도 된다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
그 많은 책을 어떻게 그 작은 머리속에 다 넣었는고? " 물었을때 순간 이발은 마음이 확 트여옴을 알수 있었다.

내가 불교서적을 접하고 적당한 이해 적당한 해결에 퍽이나 도움되는것을 피부로 와 닿는것을 알수 있는데 근 30여년 교회에 나다니면 고민하던 흔적을 싹 가시게 해주는 明句들이 많음에 탄복 하였다.
수 천년 된 바이블이 아니라 당나라때 지은 책을 통해서........

이런 뜻이 교회나부랑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책에 있을 것인가
항시 거적문처럼 열고 다니는 목사나 신부들 가치없는 혀끝이던가.
그 들이 방관하는 이교도 서적엔 천당 지옥가는 길이 훤하게 뚤여있는 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구 어딘가에 천당과 지옥을 찾고 있으니 천하에 이런 무식장이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안 읽어 봐서 그 정도인지 모르지만 나는 기독인들이 책 한 권밖에 안되는 인생을 사는것에 불쌍하다 못해 측은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주일날 세상이 떠나 갈듯 고래고래 소리치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아멘 낯선구호로 건물이 떠나갈듯 외치고 있는 저들이 어떻게 서양귀신에 쒸여 저 짓들하고 있나 한심한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다. 과거 수년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속에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으로 누구한테 그렇게 갈구하고 기원했던자가 아니였든가. 어쨌든 살아생전 귀신골에서 빠져나온 내 자신이 이젠 떳떳하게 느껴진다. 정말 교회는 귀신들만 피의 성찬을 즐기는 소굴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움을 느낀다. 자유스러움을 만끽하며 모든게 생각에서 일어나고 잦힌다는 것을 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