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기독의 목표는 '기독교 박멸'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독교의 가르침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허구를 기록한 책이고, 예수가 실존하지 않았다거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와 다르다는 것만 입증하면 기독교의 기반을 간단하게 허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티기독들은 이러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여 왔습니다.
기독교의 근간을 흔둘 수 있다는(?) 수많은 자료들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본고에서는 그중 한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안티들이 즐겨 사용하는 자료 중 '성혈과 성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영국 재판설이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성혈과 성배'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세까지 아내와 같이 살면서 자녀를 낳아 양육했다는 내용의 진위에 대해 영국에서 재판이 걸렷는 데, 재판을 맡은 판사가 이것이 사실이라고 판결하여 일대 소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성직자들까지 이에 충격을 받아 신앙을 버렸다는 기사로 동아일보에 소개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티들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이러한 영국의 재판은 없었고
1982년 2월 20일 영국 재판 내용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는 것도 조작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를 게재하겠습니다.
위의 자료를 보면 1982년 2월 20일 동아일보 6면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내용은 영국재판설입니다.
영국에서 성혈과 성배에 나오는 예수의 결혼과 망명설을 재판하였는 데 판사가 이것이 옳다고 판결하였다는 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조작입니다.
위의 자료와 아래의 동아일보 기사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안티가 조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에게 후손이 있다'는 영국에서 발간된 '성혈과 성배'라는 책이 화제라는 책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이것을 안티가 마치 동아일보에 영국 재판설이 보도된 것처럼 자료를 조작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안티하기 위해서는 자료조작도 불사하는 안티기독의 참모습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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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82년 2월 20일 토요일(6면 기사 전문)
<표제> 예수에게 후손 있다 - 英에서 발간된 성혈성배 화제
<기사 전문>
예수크리스트가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아나 현재 유럽의 귀족 들 중에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한 책이 지난 주 런던에서 발매되자 세계적으로 화제와 파문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뉴스위크지도 이 책의 주장과 반응을 종교 페지에 다루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책의 제목은 「성혈 성배」성혈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흘린 피를 뜻하고 성배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고 그 뒤 십자가 밑에서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컵을 말한다.
저자는 3명으로 영국의 TV 프로듀서인 헨리링컨, 미국태생의 소설과 리처드 레이, 뉴질랜드의 사진작가 미첼 베이전트이다.
이들은 성혈과 성배에 얽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10년동안 추적한 결과를 책으로 쓴 것인데 기독교계에 폭탄적인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하면 예수는 독신생활을 한 구세주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아이들을 가졌고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체 함으로써 다윗왕을 계승하려 했으나 결국에는 그의 조국에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들 저자는 예수가 가짜 처형 끝에 살아남았다는 전설은 2세기 경의 그노시스(영적 인식으로 기독교 본질을 설명하려 했던 이단 기독교)에서부터 전해 왔고 최소한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학자들은 예수의 아내와 자녀들이 그해 프랑스의 「골」지방으로 가 정착했는 데 그곳에서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 통치아래 동화됐다는 것이다. 그후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지하로 잠적하는 데 1199년 예수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꼬드 프로 아드 부아용」이 십자군들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에서 다윗왕을 다시 계승했다고 지적했다.
이 점에 대해 성당기사단(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됨)과 「시온의 수도원」이란 비밀조직은 예수가의 비밀을 신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저자들은 「시온의 수도원」이란 조직은 유럽과 영국의 많은 귀족들이 예수의 먼 친척이란 징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책의 저자가 예수가의 비밀을 캐내게 된 동기는 저자 중 한 사람인 「링컨」이 남부 프랑스의 한 신부가 1890년 이 지방의 부와 얽힌 비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매혹당하면서부터였다. 이야기란 그 신부가 성당 기사단의 비밀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 데 그 내용 중에 「시온의 수도원」이 간직했던 비밀을 밝히는 고대 서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스스로를 살아있는 「시온의 소수도원」멤버가 돼버렸다고 주장할 정도로 기록을 신봉하게 되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이 출판되자 영국에서 곧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성직자와 비평가들의 분노와 비난도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때 예수는 ‘동성연애자’가 아닌가 암시하기도 했던 성공회의 신학자 「후몬피오리」주교는 이 책에 대해 ‘아마튜어적이고 무식하고 괴상하다’고 혹평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이 책이 나오지 않았지만 「시온의 소수도원」내부 비밀에 대해 저자들에게 알려졌으며 자신도 ‘예수의 후손’으로 꼽히고 있는 「피에르 플랑타르」도 잔뜩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랑타르」에게 저자를 소개해준 언론인 「스메이으」씨도 이 책 내용의 상당부분을 부인했다.
이 같은 관련자들의 부인에도 불구, 저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학자적이고 사려깊은 것이었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들이 반문하는 내용이 재미있다.
“어떤 한 사람(예수를 지칭)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한것인가 아니면 처녀의 몸속에서 태어나 물위를 걷고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위의 기사와 함께 두개의 그림이 실렸는 데 이는 조작기사에서 인용된 그림과 같은 그림이다.
하나는 ‘예수와 막달라마리아는 부부였다’라는 제호의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후손’으로 지적된 「플랑타르씨와 아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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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반기련 자게에 올라온 조작된 기사 내용입니다.
반기련 게시판에는 이러한 류의 기사가 많이 올라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재판설을 성혈과 성배 책자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에 껴넣어 사실성을 돋보이게 의도합니다.
위의 일련정종 블로그에서는 아예 기사를 날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제목 : 레오나르도다빈치와 예수부활..②
글쓴이 : 기독교를싫어 하… (125.♡.75.34) 날짜 : 06-01-10 19:08 조회 : 63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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