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된 사연

나는 왜 안티기독교인인가? - 옮겨온 자료

시골마을 주민 2011. 5. 15. 23:35

다수의 안티기독(이하 안티)들은 과거 교회에 몸담았던 일이 있는 이들입니다.

안티기독들 중에는 신학대 출신도 있고, 전도사나 목사 출신도 있습니다. 안수집사 임직을 받았던 자도 있습니다.

70% 정도의 안티들이 과거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독교에서 안티로 개종(?)한 사례는 많이 나와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찾기가 어렵습니다.

2010년 3월 안티활동을 하다가 교회에 출석한 이의 대담기사가 있어 옮겨 왔습니다.

안티기독이 된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한국 기독교의 행태에 대한 비판에서였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안티가 되어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비난하며 배타성을 가진 상식선을 벗어난 안티기독의 모습을 보고 안티를 떠납니다.,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은 대담을 한 분은 기독교의 일부 행태가 상식선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 안티가 되었다가 같은 이유로 안티를 떠난 분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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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안티기독교인가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04

 

입력 : 2010년 03월 22일 (월) 13:19:38 [조회수 : 3251] 임병인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최근에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반기련)이 반기독교 광고문을 버스에 실었어요.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문구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버스 회사에 항의하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4일 천하'로 막을 내렸습니다. 

전 과거에 반기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참여하지는 않지만 항상 나 스스로를 '반(反)기독교인'(안티크리스천, 또는 반종교인. 주로 '안티기독교'라 함. 편집자 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저에게 안티기독교에 관해 몇 가지 질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 요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예전에 안티기독교 활동을 했는데, 이유가 있다면?

한국 기독교의 일부 행태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교회에서 교회의 규칙만을 배워 행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 한 가지 논리에 세뇌당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마약 중독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초창기에 반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상식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이나 한국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죠. 종교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이잖아요. 필요한 사람도 있고 불필요한 사람도 있어요. 불필요한 사람 대부분은 다른 것에서 만족을 얻고 있죠.



- 안티기독교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나요?

안티기독교는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을 한다고 규정하여 말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안티기독교도 기독교처럼 여러 분파가 있었고, 그 분파들 사이에 분쟁이 기독교의 이단 논쟁이나 사탄 악마를 정죄하는 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심각하였으며, 시대별로 태도를 달리했기 때문이죠.

안티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분쟁이 있었고 그 분쟁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모임이나 단체가 생성되었는데, 기독교인들의 이단 논쟁, 교파 분열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초창기라 할 수 있는 대략 10년 전의 안티기독교는 양식 있는 지성인들이 모여서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상식선에서 비판하며 건전한 다른 대안을 찾는 모임이 분명했어요.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뒤, 한국 기독교에 많은 피해를 당해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감정적으로 한국 기독교를 비난하게 되었죠. 차차 기독교를 이 세상과 인간에게 오직 해만 끼치기 때문에 반드시 박멸해야만 하는 사회악으로 규정하게 되었고, 이 사실에 대한 어떤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 한국 기독교는 끊임없이 반성하고 달라지는데, 한국 기독교뿐 아니라 인간의 종교심, 감성,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절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어떤 다른 의견도 허용하지 않는 안티기독교의 모습이 도리어 상식선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많은 공격과 내부 분열이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배타적이 되어 버린 것이죠.


- 기독교인들이나 안티기독교인들은 왜 상식선 넘기를 서슴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해 볼 때, 상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는 지극히 상식 이하의 황당한 말과 행동이 또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는 누구나 지켜야 할 절대 진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길이라면 다른 사람의 상식이나 사회의 도덕 법률 따위가 중요하겠습니까? 그 길을 찾은 사람은 오직 그 길만 가면 됩니다. 빛이 있는 동안 그 빛만을 따라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식적인 비판이나 논리적인 설명도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뭇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도, 그 의지를 꺾지 못할 것입니다.


- 안티기독교 생활도 했고 교회도 다니고 있는데, 돌아보면 어떤가요?

사람의 모습을 보다 보면 항상 제 삶의 모습이 교차되곤 해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할까, 나는 왜 사는 것인가. 사람이 가는 길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합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이가 적고 신뢰하는 이 더욱 적습니다. 어쩌면 철저히 나 혼자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나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엇이 옳다고 믿거나 주장하지 않아요. 저는 단지 이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다가 오직 죽을 뿐이에요. 저는 제 발길 닿는 대로 가는데, 그곳이 산이거나 들이거나 교회이거나 시민 단체이거나 마약 소굴이거나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제가 만나는 것은 무슨 주의나 사상이 아니라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사람 모습이며 사람의 삶이고 그 의지라는 거죠.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데, 그 와중에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든 안티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든 그 선택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고 쟁취하고 눈물 흘리고 상처 받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에요.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죽어 가는데 그 삶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며 관심도 없어요. 제 관심사는 오직 저에 관한 것이에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죠.



-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될 거라고 보시나요?

한국 기독교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그 한국 기독교를 포함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더욱 빨리 달라지고 있어요. 사회가 진보하면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단체로 낙인찍힐 수도 있으나 또 어찌 보면 생각의 자유, 표현의 다름을 인정하는 진보의 또 다른 면으로서 한국 사회가 한국 기독교를 품어 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