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자료는 지금은 문을 닫은 기독교 포털 호산나넷에서 나라밝이라는 안티와 벌렸던 역사 왜곡에 대한 논쟁입니다.
나라밝이라는 안티는 3.1운동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을 부정하기 위해 33인을 비하합니다.
그는 33인 중 기독교 대표는 해외로 달아난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변절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티활동을 하기 위해 역사까지 날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러한 황당한 주장에 대해 대백과사전을 찾아가며 33인중 기독교 대표 16명의 행적을 조사했고 이에 대한 반론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나라밝이라는 안티는 양식이 있어서 자신이 잘못된 자료에 근거해서 오류를 범했다고 33인 중 기독교 대표였든 분들에게 사과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결코 안티활동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당시는 화면 갈무리를 할 줄 몰라 복사해온 자료만 올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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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티기독교인의 역사 왜곡(2000-10-23오후 10:45:49)
요즈음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안티기독교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들중에는 이 호산나넷에도 들어 와 활동하고 있다.
이 토론의 장에도 활약하고 있는 데 그들은 기독교를 헐뜯는 데 크리스챤들이 전도하는 것보다 몇배의 정력을 쏟고 있다.
특히 단군문제와 제사문제 등만 나오면 안티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기를 띤다.
기독교가 민족을 부정하고 조상을 망각하고 불효를 하는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해 온갖 글재주를 다부린다.
그리고, 기독교가 반민족적이고 외세 의존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온갖 자료(대부분 엉터리 자료)를 끌어다가 사실을 왜곡시킨다.
오늘은 한 가지 예만 들고자 한다. 밑에 보면 나라밝이라는 분이 쓴 글이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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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역사...
한국의 개신교는 개화의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서양문물이 마구 들어오던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서양사상 중 개신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나라는 개화와 더불어 일본에 종속되고 말고 몇년 후 3.1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이 모이게 되는데 그 중 개신교인이 가장 많을 정도로 지식인 중에 개신교인은 많았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이 말이 민족대표지 아무도 그들을 민족대표라고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고 더 심각한 것은 개신교인들은 민족독립선언 이후 해외로 내 뺀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변절하게 된다. 나중에 변절할 걸 왜 독립선언을 했는지 의문이 간다...
아무튼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개신교는 어쩔수 없이(?) 종교적 믿음을 저버리고 신사참배를 시작했다. 자신들의 교리와 어긋난다고 단군상을 짜르는 지금과는 달리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끝까지 신사참배와 일제에 굴복하지 않는 목사들은 가차없이 교단에서 추방해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주기철 목사님... 지금은 일제에 굴하지 않은 목사의 대표적인 입지적 인물이 되었지만 99년까지는 일제시대때 목사직을 박탈당한 덕분에 목사도 아니었다. 목사도 아니었던 인물을 50년 만에(그동안 친일역사를 은폐한채) 다시 복직시켜주고 이용해먹고 있다. 하하하.
일본에 빌붙던 인간들은 결국 해방을 맞이한다. 그들에겐 반성이란 말은 없었고 이승만이 개신교였고 반민특위가 없어지면서 신사참배 목사들은 그대로 목사질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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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밝이라는 안티는 위의 글에서 기독교가 친일에 앞장을 선 반민족적 집단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역사 왜곡은 일제만 하는 줄 알았는 데)
나는 위의 글중 한가지만 여기서 반박하겠다. 삼일운동에 앞장을 선 민족대표 33인(33인이 정말 민족을 대표하느냐에는 이론이 있으나 어쨌든 그들이 삼일운동에 앞장 섰고 대부분 2년 이상 옥고를 치르었고 대부분이 정부가 수여하는 건국훈장을 받았으니까 독립운동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다) 중 16명이 기독교인이다. 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길선주, 이필주, 김병조, 김창준, 양전백,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그런데 나라밝이라는 안티는 33인 중 외국으로 망명한 1명만 제외하고는 모두 변절자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변절자는 이광수와 같은 예를 제외하고는 중일 전쟁이 시작되어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 후반부터 변절을 하게 된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회유 때문에 변절하는 경우도 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일제를 보고 자포자기하여 변절한 경우도 있다. 그러면 33인 중 기독교인의 삶을 간단히 추적하여 보고자 한다.
이분들 중 양전백목사는 1923년에, 길선주 목사는 1935년에 이승훈장로는 1930년에 별세하셨으니 친일이나 변절을 할 기회가 없었다. 신홍식목사는 1937년에 별세하였는 데 독립운동에 힘썼다고 하니까 변절자는 아니고, 박동완은 해외에 망명하여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1년에 소천하였고, 최성모는 만주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1936년에 이국땅에서 별세하셨다.
오화영은 1939년에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었으니 변절하였다고 할 수 없고, 김병조는 해방후에도 북한에서 반공운동을 하다가 시베리아에 유형되어 사망하였다고 한다.
또, 신석구목사는 일제말에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차례 투옥되었고 해방후에는 월남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무시하고 북한에 남아서 양떼를 돌보며 반공운동을 하다가 1950년 북한당국에 의해 순교하였다. 다만 정춘수목사와 박희도목사가 변절하였다는 것은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김창준목사는 해방후 북한 정권에 협조하였는 데 북한 정권에서 그를 우대한 것을 보면 최소한 일제때 일제에 협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라밝이라는 안티가 말한 33인중 해외로 도주한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변절하였다는 말은 얼마나 역사 왜곡인가?
우리 크리스챤들은 기독교인들을 외세의존적이고 반민족적으로 모는 안티들이 역사까지 왜곡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야말로 조선말에 개화에 앞장 섰고 독립운동에 앞장선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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